1




 부모님은 사랑하는 아들의 졸업식에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테토라는 잠에 젖어 무거운 몸을 이끌어 주방에 들어갔다. 어머니께서 아침 대신으로 차려둔 과일이나 빵을 손으로 더듬어 먹다 문득, 평소라면 식탁에 없었을 법한 물건을 발견했다. 그릇 옆에 용돈과 함께 쪽지가 놓여있었던 것이다. 이걸 왜 이제 봤을까? 테토라는 남은 빵 조각을 한입에 털어넣었다. 



 -졸업 축하한다.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렴. 



 급하게 휘갈겨 쓰느라 문장 끝이 비스듬히 올라간 메세지를 곱씹으며, 테토라는 며칠 전 부모님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두 분이 졸업식에 오지 못하는 것은 이미 얘기가 된 일이었다. 부모님은 테토라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늘 일에 쫓기듯 지내시곤 했다. 그래서 학교 행사에 오지 못하는 경우쯤 흔하게 있었다. 이번에는 하필 바쁜 시기와 겹쳤다고 했나, 몇 주 전부터 시간을 내려고 했지만 잘 안 된 모양이었다. 

 이제 그런 것으로 서운해하지 않을 나이인데도, 아직 부모님께는 어린아이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게 다 그렇겠지만, 괜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테토라는 하루라도 빨리 어른으로, 어엿한 남자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2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치 소꿉놀이라도 하듯 가볍게 말해왔다.

 멋있으니까, 강하니까, 이런 사람은 동경할 수밖에 없으니까.

 테토라의 마음가짐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제가 목표로 한 남자가 짊어진 무게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마음 또한 테토라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졸업식이 가까워지면서, 재학생들 사이에는 단추에 대한 화제가 간간히 입에 올랐다. 테토라가 쿠로에게 단추를 받겠노라 마음먹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말하자면, 마지막의 마지막에 부리는 어리광인 셈이다.



 "대장의 두 번째 단추가 가지고 싶슴다!"



 쿠로는 빨간 꽃잎을 어색하게 만지작거리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자못 비장하게 올려다보는 테토라의 눈을, 그는 물끄러미 보았다. 침묵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단추를 주고 말고 하는 게 이렇게 오래 생각할 일인가? 테토라는 초조하게 쿠로의 대답을 기다렸다. 주먹 쥔 손바닥에 땀이 슬금슬금 배어날 즈음에서야, 쿠로는 느릿하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무도장 구석에 있는 반짇고리에서 단추를 하나 꺼내 테토라의 손에 쥐여주었다.

 멍청하게 손바닥 위의 단추를 쳐다보던 테토라의 얼굴이 천천히, 하지만 당혹스럽게 구겨졌다.



 "저어, 대장, 이건."

 "두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교복 셔츠에 쓰는 단추다."

 "아뇨, 전혀 다름다! 제가 가지고 싶은 건 대장이 입은 옷에 달린 단추라구요. 그것도 두 번째."



 쿠로는 애써 웃음을 참는 표정으로 단추를 돌려받았다. 테토라가 무슨 생각으로 말을 꺼냈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이런 장난은 짓궂다. 테토라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네가 단추를 달라는 이유가 이거라면, 우리 교복은 별로 의미 없지 않냐?"



 쿠로는 이거, 라고 말할 때 가슴 중앙에서 조금 왼편을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나는 셔츠 안 여미고, 우리 자켓 단추는 아래쪽에 달려있고."

 "그, 그렇지만. 그래도 상징적인 의미라는 게 있지 않슴까. "

 "그런가."

 "애 같다고 생각하셔도 상관 없슴다. 대장의 두 번째 단추, 제가 가져가고 싶슴다."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게 싫은 거냐, 아니면 네가 가지고 싶은 거냐."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평소와 다름 없는 시선임에도 심장까지 꿰뚫리는 듯 했다. 하지만 테토라는, 가능한 쿠로를 똑바로 마주보려 노력했다. 



 "둘 다 임다."



 떨리는 말꼬리를 눈치채지 못한다면 좋을텐데. 화끈거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지 않으면 좋을 텐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지만, 피하면 안 된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장난기가 가득했던 쿠로의 얼굴은, 이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표정이 없었다.



 "그런 의미면 뭐든 상관없겠지."

 "예?"

 "잠시만."



 쿠로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꽃다발과 졸업장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풀었다. 줄 끝에 매달린 반지 위로 오후의 노란 햇빛이 부서졌다. 테토라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눈만 깜빡거렸고, 쿠로가 직접 목걸이를 걸어주는 것을 보기만 했다. 



 "그게 가장 가까이 있었잖냐."



 여기. 쿠로는 아까와 같은 곳을 두드렸다. 

 손마디가 불거진 쿠로의 손은 어른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테토라에겐 그렇게 보였다.



 "니가 말하는 상징적인 의미에 가장 가까운 게 그거라고."



 테토라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떨어트렸다. 쿠로에 비하면 작고 보잘것없는 제 주먹이 눈에 들어왔다. 넥타이 위에 걸쳐졌던 반지가 스르륵 떨어져 셔츠에 닿았다. 단추와는 전혀 다른 무게감이 가슴에 내려앉았다. 늘 하고 다니던 목걸이는 의미있는 게 아니었던 걸까? 제게 이걸 받을 자격이 있을까? 테토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래서야 쿠로의 다정함에 기대 어리광부리던 지난날들과 다를 게 없었다. 



 "테츠."



 테토라는 쿠로가 몇 번이나 부른 다음에야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냐."

 "제가 이걸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슴다."

 "단추는 받을 자격이 있고?"



 그렇게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다. 테토라는 다시 입을 꼭 다물었다. 고작 한두 살 차이인 나이 탓을 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테토라는 쿠로보다 어리고, 미숙하다. 일 년 전보다는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한 자신의 미숙함을 깨달으면 어쩐지 분하다. 하지만 멈춰있을 수만도 없다. 

 테토라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조금의 용기가 필요했다. 테토라가 말을 고르는 동안, 쿠로는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대장. 한 가지만 약속해주실 수 있슴까."

 "말해봐."

 "이 목걸이, 역시 받을 수 없습니다."

 "흠."

 "그러니까, 제가 졸업하는 날 다시 받아주실 수 있슴까. 그때까지만 제가 빌리는 것으로 하겠슴다."



 쿠로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피식 웃으며 당돌한 후배의 정수리를 꾹꾹 눌렀다. 얼마나 세게 쓰다듬는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테토라는 이러다 키 작아지겠다고, 아프다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어린애처럼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쿠로가 퍽 만족스러운 듯 웃고 있었으니까. 그게 아주 조금 기뻐서.



 "네가 어엿한 남자가 되어있다면 말이지."

 "당연히 그럴검다. 대장이야말로 그때가서 제 남자다운 모습에 놀라지나 마십쇼."

 "녀석, 허풍은."



 딱, 이 년 전 오늘의 이야기다.






3





 삼 년간 함께한 교복은 세월만큼 낡은 감이 있어서, 실밥이 너덜거리는 것만으로 무척 헌 옷처럼 보인다. 테토라는 옷장에 걸린 자켓을 꺼내다, 문득 왼쪽 소매 단추 한 개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언제 떨어진 건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아직 세심함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테토라는 피식 웃곤 실밥을 손으로 대충 뜯어냈다. 지난 2년간 늘 어엿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시간만 보낸다고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이렇게나 널려있다.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기 전, 테토라는 목에 걸린 반지를 한 번 만지작거리곤 셔츠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반지의 무게가 가슴 위로 떨어졌다. 가볍디가벼운 이 무게는 그동안 테토라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는 원동력이었다. 테토라는 늘 그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테토라는 조금 이른 시간 집을 나섰다. 부모님께서 챙겨준 용돈은 바지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었다. 미도리와 시노부에게 맛있는 식사라도 사며 기분이라도 낼 생각이었다. 테토라는 이미 두 사람과 약속한 양 마음속으로 정하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반지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그게 오늘따라 유난하여, 테토라는 자꾸 셔츠 위로 반지의 형태를 확인하듯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4




 그때부터 쭉, 테토라는 이날 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쿠로는 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5




 졸업식이 끝난 뒤, 테토라는 마지막으로 무도장을 찾았다.

아무도 없는 무도장은 늘 그랬듯 삭막하리만큼 정돈되어 있었다. 가라테부의 부활동은 도장 정리를 마지막으로 한다. 이는 테토라가 입학하기 전부터 가라테부에 있었던 규칙이었다. 늘 마무리까지 꼼꼼히 살피는 누군가의 성정을 꼭 닮은 규칙. 테토라는 텅 빈 무도장을 찬찬히 살폈다. 오늘로 이 학교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많은 것을 여기 남겨두고 떠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령, 쿠로와의 단편적인 추억이라던가.


 빨간 장미꽃이 도드라지는 꽃다발은 쿠로를 위해 테토라가 고심한 것이었다.

 쑥스럽게 웃으며 꽃다발을 받은 쿠로의 얼굴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고맙다고 말하던 목소리조차 생생하다. 생각보다 빨간 꽃다발은 쿠로와 무척 잘 어울려서, 함께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 걸 그랬지 뒤늦게 후회했다. 그깟 단추에 목매지 않았더라면 사진 찍을 여유 정도는 있었을 텐데.

 쿠로가 빨간색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기에 테토라 역시 빨간색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렇게 치아키에게 물려받은 유성 레드로서의 시간 동안, 테토라는 얼마나 성장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쿠로가 저를 보러 오지 않은 걸 보면 아직 그의 마음에 찰 만한 남자가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왜냐면 쿠로는 한 번 한 약속은 꼭 지키는 남자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대장, 대장은,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저를 기다리고 계신 거죠.

 제가 아직 어엿한 어른이 되지 못해서, 그래서 오지 않으신 거죠?

 언젠가, 대장도 깜짝 놀랄 만한 어엿한 어른이 되면, 그때는 꼭 제게 와주셔야 함다.

 빌리는 거로 해두자고 하지 않았슴까. 

 대장.


 짧은 휴대폰 진동이 찬물처럼 끼얹어졌다. 테토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시노부에게 온 문자였다. 먼저 만나자고 한 사람이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찾는 것은 당연하다. 친구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다. 테토라는 무도장을 나서기 전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비록 영원히 오늘이 계속된다 할지라도, 그대로 멈춰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무심코 반지에 손을 올리니, 주먹 쥔 손의 가장 안쪽까지 심장의 고동이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