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 동생 날조설정 주의*






 동생도, 이제 그럴만한 나이가 된 것 같다. 

 쿠로는 화장품 코너 앞을 떠날 줄 모르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어쩐지 저 작은 아이가 한 뼘은 더 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동생은 최근 들어 부쩍 스스로 꾸미는데 흥미를 보였다. 옷 한 벌을 사도 그냥 고르지 않았고, 아침마다 어떻게 머리를 묶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마냥 어린아이인 줄 알았던 동생도 조금씩 커 가는 것 같다. 그래도 아직 초등학생인데, 립스틱이나 마스카라 같은 건 이르지 않을까? 쿠로는 신중하게 생각했다.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슬슬 집에 가자. 저녁 먹어야지."




 동생은 조금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선 자리에서 쿠로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꼭 다문 입술에서 이걸 꼭 갖고야 말겠다는 다짐 같은 게 보였다. 쿠로도 멀뚱히 쳐다만 보았다. 

 보이지 않는 공이 다섯 걸음 남짓한 공간을 두고 두 사람 눈에서 눈으로 치열하게 오갔다. 하지만 처음부터 쿠로가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애초에, 쿠로는 동생에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무얼 그리 보고 있나 했더니 손톱에 바르는 네일 폴리쉬였다. 유닛 활동을 할 때 종종 사용하는 물건이니만큼 쿠로에게도 낯설지 않은 물건이다. 집에는 쓰는 사람이 없으니, 아마 동생에게는 퍽 낯선 물건일 것이다.




 "이게 가지고 싶어?"

 "오늘 마나미가 손톱에 이거 칠하고 왔어."

 "너한텐 아직 이르지 않냐?"

 "근데 그 기집애가 너네 집에 이런 건 없냐고 그러잖아."

 "이거 얼맙니까?"

 "그 색 말고 이거."




 동생이 내민 빨간색 네일 폴리쉬를 홀린 듯 결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쿠로는 뒤늦게 자괴감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다 받아주는 것 만이 사랑이 아니라고 질책하던 케이토가 떠올랐다. 꽤 자주 듣는 소리였고, 늘 이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얼버무렸지만 이쯤 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쿠로는 동생에 관련된 일이면 쉽게 이성을 놓는다. 일로 바쁜 아버지는 얼굴 한 번 보기가 어려우니, 자연스럽게 동생에 관한 것은 모두 쿠로의 몫이다. 단순한 오빠 노릇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고등학생인 데다 사색에는 영 자신 없는 쿠로가 부모의 역할까지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런 복잡한 심정까지 알 리 없는 동생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냥 신이 났다.




 "이거 언제 칠해줄 거야?"

 "저녁 먹고."

 "설거지는 내가 할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동생이 기뻐하면 그걸로도 마음이 풀어진다. 그래서 아 정도는 괜찮지 않겠냐며 어물쩍 넘겨버리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아무래도 좋은 오빠가 되긴 그른 것 같다. 쿠로는 동생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니. 넌 TV라도 보면서 기다려."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바닥 아래서 기분 좋게 미끄러졌다.




* * *




 그로부터 며칠쯤 지난 다음일 것이다.

 부활동이 있는 날이었고, 테토라가 쿠로의 손발에 몇 번쯤 드러눕고 일어나길 반복하다가 이윽고 완전히 뻗어버렸을 때였다. 두 사람이 대련을 할 적이면 테토라가 한 번에 일어나지 못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었고, 그것이 으레 대련의 마침표가 되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서며 한 번 더 부탁드린다며 더듬거리는 녀석을 더 굴릴 수는 없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다."




 그렇게 말하며 이마를 툭 치니, 중심을 잃고 고꾸라지는 걸 보면 이번엔 좀 심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테토라는 감사합니다, 라거나 대장은 역시 강함다, 하고 간헐적으로 중얼거렸다. 포기를 모르고 도전하는 녀석이 내일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것도 쿠로의 소소한 낙 중 하나였다.

 매트에 엎드려 시근덕거리던 테토라가 문득 쿠로의 발을 보았다.



 "어라, 대장, 발톱이."



 미처 이어지지 못한 말은 쿠로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 발톱마다 피라도 난 마냥 시뻘겠다. 정확히는 발톱과 그 주변 살 위로 빨간 것이 덕지덕지 묻었다. 어리둥절해서 만져보니, 손끝에 느껴지는 촉감이 딱 매니큐어의 맨질맨질한 느낌이었다. 쿠로는 며칠 전 동생에게 발라준 빨간 네일 폴리쉬를 기억해냈다.




 "매니큐어임까?"

 "어, 동생이 바른 것 같은데."




 쿠로는 멋쩍게 웃으며 두 발을 끌어모았다. 상대적으로 작은 새끼 발톱은 아예 발가락 전체가 폴리쉬로 뒤덮혀있었다. 한숨 돌린 테토라가 느릿하게 몸을 바로세웠다.




 "하긴, 대장한테 그런 장난을 칠 수 있는건 동생분 뿐이죠."

 "뭐 그렇지. 며칠 전에 사달라고 졸라서, 매니큐어를 사줬거든. 엄청 좋아하더라고. 그걸로 나한테 장난을 쳤을 줄은……."




 동생과 친구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쿠로가 정확히 아는 것은 없었다. 그 '마나미'란 친구랑 이후로도 사소한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어렸을 때처럼 미주알고주알 얘기해주진 않았다. 다만 때때로 제 빨간 손톱을 뿌듯하게 매만지는 동생을 보며 마음에 드는가보다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왜 제 발톱에 장난을 친 건지, 크고 넓은 발톱이 딱 좋은 도화지처럼 보인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도 쿠로는 모른다.

 테토라는 마냥 웃는 쿠로를 한 번, 그리고 쿠로의 빨간 발톱을 한 번 번갈아 보았다.




 "그냥 두시는 검까?"

 "발톱이니까 상관없지 않냐. 어차피, 이걸 볼 사람은 너나 동생 정도고."

 "하지만 대장, 다음 주에 대회가 있지 않슴까. 그러고 나가시는 검까?"

 "그럼 그때 지우지 뭐."



 폴리쉬는 발톱 뿌리 쪽에 둥글게 뭉쳐있기도 했고, 발톱 전체에 고르게 발리지 않아 허연 살색이 그대로 보이기도 했다. 특수 폴리쉬도 아니니 손톱으로 긁으면 바로 떨어질 것이다.

 어찌 되었건, 쿠로는 이 빨간 매니큐어를 지울 수 없었다.




* * *




 그리고 바로 다음날,




 "대장, 이거 보십쇼!"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무도장에 들어온 테토라가 다짜고짜 양말을 벗었다. 

 당황한 것도 잠시, 쿠로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저는 유성 블랙이니까, 까만색임다."




 쿠로의 빨간 발톱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테토라는 제 까만 발톱을 내보이며 씩 웃었다.

 두 사람의 빨갛고 까만 발톱은 함께, 조금씩, 잘게 조각나는 나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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