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무도장에는 짧은 기합과 맨발이 바닥 위로 미끄러지는 소리만 이따금 들렸다. 

 꽉 움켜쥔 주먹이 쿠로를 향해 연달아 날아왔다. 공기를 가르는 기세 만큼은 매섭다. 쿠로는 테토라의 정권을 어렵지 않게 흘려보냈다. 헛점투성이인 옆구리를 후려치자, 테토라는 신음을 삼키며 몇 걸음 물러났다. 이내 이를 악 물고 다시 덤볐지만, 녀석의 주먹에는 잡념이 너무 많았다. 쿠로가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녀석과 대련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쿠로는 섣부르게 품으로 파고들어온 테토라의 턱을 올려치고 곧바로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탓에 정수리로 날아오는 쿠로의 손날을 미처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테토라는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 위로 두 팔을 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쿠로의 공격이 이어지지 않았고, 온몸에 힘주어 긴장하던 테토라도 이내 한쪽 눈을 슬쩍 떴다. 제 머리 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의아한 듯 보였다. 당연하다. 쿠로는 진작에 테토라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기 때문에. 테토라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야 보란 듯, 테토라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겼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짧은 비명이 무도장 창문을 넘었다.

 하얀 이마가 금세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아프긴 아팠는지, 테토라는 이마를 문지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쿠로로서는 봐준다고 한 건데, 저 정도면 혹이 날 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평소라면 더 할 수 있다며 덤볐을 테토라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무리 인사를 한 뒤, 뒷정리하는 녀석의 얼굴이 영 좋지 않았다. 오늘 아침도 꼭 지금과 같은 표정이었다. 테토라를 지켜봐 온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 덕분에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에 보 일듯 훤하다. 

 쿠로는 늘 그랬듯,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네기보다 침묵을 택했다. 

 3월, 여러모로 학교 안이 뒤숭숭한 시기이다. 졸업하는 이들은 물론, 학교에 남아 선배를 배웅해야 하는 후배의 심정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테토라의 고민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 듯 보였다. 



 '대장,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쉬는 시간, 3학년 교실까지 올라와 대련을 청하던 테토라를 보며 그런 확신이 들었다. 유성대의 답례제 준비가 잘 안 풀리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케이토와 소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번 답례제에 신청 서류를 내지 않은 유닛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언데드, 홍월, 그리고 유성대. 

 쿠로는 기꺼이 승낙했다. 안 그래도 줄곧 일에 치여서 부활동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좀이 쑤시던 차였다. 졸업하면 언제 또 녀석과 주먹을 맞댈 수 있을 지도 모르고. 핑계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무엇보다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녀석을 지켜보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쿠로 역시 잘 알고 있다. 테토라라면 아마 옳은 길을 찾아낼 것이다. 그래서 쿠로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정도였다.

 그래서, 흘린 땀 만큼의 도움은 되었을까.

 쿠로는 셔츠 단추를 잠그는 테토라의 등을 팡팡 두들겼다. 힘없이 굽었던 어깨가 화들짝 튀어 오른다. 영문 모르고 저를 올려다보는 테토라를 향해 쿠로가 씩 웃었다.



 "힘내라고, 유성 레드."

 "……그 이름은 정식으로 물려받은 다음에 불러주십쇼."



 그제야 겨우, 테토라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